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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할 게 뻔해야 좋은 연구다

Global AI Frontiers Symposium 2026 딥다이브 패널. 로봇의 기억, 에이전트의 시간 지평, 벤치마크의 불안정성 — 그리고 몇 년을 걸 만한 문제를 고르는 법.

목차

로봇공학 하는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이런 말을 했다. “제 로봇은 소금통을 어디 뒀는지 기억 못 합니다.” 웃자고 한 말이 아니었다. 지금 나온 로봇 연구는 거의 다 로봇이 방 안 전체를 한눈에 보는 상황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로봇이 집 안에서, 병원에서, 몇 주 몇 달에 걸쳐 계속 돌아다니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뭘 어디에 뒀는지, 뭘 했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토큰 스트림이 기억의 한 형태라는 건 다들 아는데, 토큰 스트림이나 파일 쓰기 정도로는 소금통 위치를 기억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는 거였다. 부분 관찰과 기억 — 로봇공학에서 지금 제일 큰 문제라고 했다.

Global AI Frontiers Symposium 2026의 딥다이브 패널 토론에 앉아 있었다. 로봇공학 하는 MIT의 레슬리 팩 케일블링(Leslie Pack Kaelbling), 오픈AI 리서치 VP 노암 브라운(Noam Brown), AI for Science와 딥러닝·헬스케어를 하는 NYU 글로벌 AI 프론티어 랩의 조경현(Kyunghyun Cho), 그리고 공정성과 감사(auditing)를 연구하는 NYU의 에밀리 블랙(Emily Black)까지 넷이 무대에 있었다. 모더레이터인 KAIST 김기응 교수는 이 자리를 세 라운드로 짰다. 첫 라운드는 각자 분야의 기술적 최전선, 두 번째는 연구 취향, 세 번째는 한국이라는 맥락. 듣다 보니 세 라운드 다 결국 같은 질문으로 수렴했다. 뭘 풀어야 하고, 왜 그게 어렵고, 그걸 어떻게 고르느냐는 질문.

아직 아무도 못 푼 것들

레슬리 다음으로 마이크를 받은 노암 브라운은 에이전트의 작동 시간 지평을 얘기했다. 최근에야 에이전트가 한 시간 단위로 뭔가를 붙잡고 있을 수 있게 됐다고, 근데 그걸 더 밀어붙이고 싶다고 했다. 방향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시간 지평을 계속 늘리는 것, 다른 하나는 에이전트끼리 협업하게 만드는 것. 지금은 각자 문제를 풀고 그중 제일 나은 답을 고르는 수준인데, 투표를 시키거나 작업을 나눠 맡기는 식으로 더 정교하게 조율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조율 능력이 결국 사람과 협업하는 능력으로도 이어질 거라고 했다.

에밀리는 결이 달랐다. 공정성과 감사 연구를 하면서 요즘 제일 붙잡고 있는 문제는 ML 평가의 불안정성이라고 했다. 벤치마크를 하나 발표해도 그게 매번 다른 결과를 안정적으로 재현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거다. 본인도 벤치마크를 내는 사람이지만, 특히 안전과 공정성 맥락에서 위험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했다. 롱테일 분포처럼 흔치 않은 위험들을 어떻게 맥락에 맞게, 시간이 지나도 견고하게 이해할 수 있는가 — 그 질문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했다.

세 사람의 대답을 나란히 놓고 보니 재미있었다. 로봇은 기억을 못 하고, 에이전트는 아직 한 시간짜리 일밖에 못 하고, 벤치마크는 다시 돌리면 다른 답이 나온다. 셋 다 “이 정도면 됐다”고 하기엔 한참 멀었다는 얘기였다.

성공해도 아무것도 안 바뀐다면

두 번째 라운드에서 모더레이터가 던진 질문이 좋았다. 요즘 젊은 연구자들은 문제가 주어지면 실행은 기가 막히게 잘하는데, 몇 년을 걸 만한 문제를 어떻게 고르는지는 훨씬 어려운 질문이라는 거였다. 어떻게 하면 야심 차면서도 최신 트렌드를 그냥 따라가지 않는 문제를 고르도록 학생들을 이끄는가.

레슬리의 답은 단호했다. 가장 중요한 건 긴 호흡이라고 했다. 다음 학회에 논문 내야 한다는 압박은 항상 있지만, 지금 하는 프로젝트가 될 거라는 확신이 든다면 이미 실패한 거라고 했다. 충분히 멀리 안 간 거라고. 그래서 본인은 늘 안 될 것 같은 일을 하고 있고, 그게 자기가 하는 일의 본질이라고 했다. 될 것 같지 않은 일을 밀어붙이다 보면 거의 항상 뭔가 흥미로운 게 튀어나온다고. 학생들한테는 논문을 적게 쓰고, 더 멀리 내다보고, 일주일에 반나절은 노트와 펜만 들고 벤치에 앉아 생각만 하라고 말한다고 했다. 그게 효과가 있는지는 본인도 모르겠다고, 다만 그렇게 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노암 브라운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같은 얘기를 했다. 연구는 원래 고위험 사업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시작한 거라고, 그런데 늘 저위험 안전한 선택 쪽으로 끌리는 유혹이 있다고 했다. 박사 과정 때 쓴 논문 중에 결국 아무 의미도 없었던 게 많았고, 정말 중요했던 건 몇 편뿐이었다고. 돌아보면 의미 없었던 논문들은 대체로 야심 차지 않았던 논문들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했다. “이게 성공하면 뭐가 달라지는가?” 성공해도 게임 체인저가 아니라면, 그건 할 가치가 없는 방향이라고. 그리고 연구자에게 제일 중요한 자질은 업데이트할 줄 아는 능력, 즉 적응력이라고 했다. 본인이 한때 어떤 분야의 전문가였는데, 어느 순간 그 분야보다 test-time compute를 스케일링하는 쪽이 훨씬 임팩트가 크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이미 쌓아온 전문성을 붙잡고 있을지, 확신이 가는 방향으로 갈아탈지 고민했고, 갈아탄 게 다행이라고, 대체로 그게 맞는 선택이라고 했다.

조경현은 좀 다른 방향에서 뼈아픈 고백을 했다. AI for Science를 한다고 소개받은 사람으로서, 지금 학생들이 손대지 말아야 할 게 있다면 ‘가설 생성’을 통째로 자동화하는 접근이라고 했다. GPT 같은 모델에 가설을 생성시키고 그걸로 논문을 냈다는 사례가 요즘 쏟아지는데, 그 아이디어들이 실제로 반복 검증돼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지 확인하는 과정이 빠져 있다는 거다. 검증 없이 아이디어를 대량으로 뽑아내기만 하는 건 시간과 에너지 낭비라고, 일종의 판타지 제너레이터가 돼버렸다고 했다. 발표하고 퍼블리시하는 데만 급급한 논문들이 너무 많다고, 그중에 실제로 뭔가 되는 건 거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에밀리는 자기 연구 아이디어의 상당수가 정책 세계에서 온다고 했다. 각국이 AI의 어떤 부분을 규제하고 보호하려 하는지를 지켜보면서 질문을 얻는다는 거다. 학계 밖 협력자들, 특히 정부와 정책 쪽 사람들, 그리고 업계 사람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게 임팩트 있는 연구 질문을 찾는 자신만의 방법이라고 했다. 어떤 문제는 아직 안 풀렸다는 것도 모른 채 붙잡고 있다가 나중에야 그게 얼마나 어려운 문제였는지 알게 된 적도 여러 번이라고 했다.

이어진 질문 하나가 마음에 남았다. 대학원생 정체성에 관한 거였다. AI 시대에 다시 대학원생으로 돌아간다면 뭐라고 말해주겠냐는 질문에, 한 패널리스트는 AI가 학습 도구로는 훌륭하지만 기초는 스스로 몸으로 통과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AI가 나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나를 빠르게 만들어주는 도구가 된다고. 좋은 실험을 설계하는 능력, 내가 연구하는 게 실제로 맞는지 확인하는 법을 아는 게 여전히 제일 중요한 통제점이라고 했다.

세 번째 라운드는 한국으로 넘어갔다. 오픈AI 서울 사무소가 문을 연 지 몇 달 됐다는 얘기가 나왔고, 한국이 하드웨어 쪽에서 글로벌 리더인데 그게 계속 저평가돼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지난 10년간 AI가 이만큼 발전한 건 결국 칩과 전력 때문이고, 앞으로 아이디어의 병목은 하드웨어가 결정할 거라고 했다. 한 패널리스트는 한국 젊은 연구자들 사이에 야망의 상한선이 낮게 잡혀 있다는 불문율이 있다는, 다소 씁쓸한 지적도 했다. 정확히 뭘 근거로 한 얘기인지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 문장 하나는 계속 마음에 걸렸다.

질의응답에서 나온 두 질문이 특히 좋았다. 하나는 윤리적 가드레일에 관한 거였다. 레슬리는 놀라울 정도로 솔직했다. “저는 평생 로봇을 더 잘 작동하게 만들려고 애썼는데, 로봇은 여전히 거의 작동하지 않습니다. 로봇이 정말 잘 작동하게 되면 사회적 파급력이 엄청날 텐데,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부끄럽게도 아이디어가 없습니다.” 에밀리는 다른 답을 했다. AI가 사람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인 지금이 운 좋은 시기라고, AI가 어떤 면에서는 사람보다 빨리 나아지겠지만 다른 면에서는 계속 사람보다 못할 거라고, 그러니 최고의 대체재가 아니라 최고의 보완재를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본인은 지난 일곱, 여덟 달 동안 팀에 채용을 하지 않았고 지금 두 개의 오퍼가 남아 있는 상태라고, AI 덕분에 커리어 통틀어 가장 생산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도 했다.

다른 하나는 학계 대 업계 질문이었다. 자원 격차가 이렇게 큰데 학계에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였다. 조경현의 답이 인상 깊었다. 몇 년 전부터 업계가 깨달은 게 있는데, 컴퓨팅 자원 투입량과 결과(정확도나 퍼플렉시티) 사이에 거의 완벽하게 예측 가능한 관계가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 결과에 금전적 이득이 걸려 있다면, 그게 바로 회사를 만들 이유가 된다고 했다. 예측 가능하니까 투자를 받고, 자원을 쌓고, 더 부어넣으면 된다는 거다. 대학은 그런 지속 가능한 사업을 하기에 끔찍한 곳이라고, 그러니 오히려 그런 문제는 피해야 한다고 했다. 대신 데이터를 더 넣어도 예측 가능하게 좋아지지 않는 문제들 — 예를 들면 개인 맞춤 치료 효과 추정 같은 것 — 이 학계가 진짜 파고들어야 할 자리라고 했다. 노암 브라운도 거들었다. 학계의 자유는 극단적인 반대 의견도 낼 수 있다는 데 있다고, 회사가 하고 싶어하지 않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크다고 했다. 그리고 업계 사람들도 결국 다 사람이라 모든 걸 다 생각해내지는 못한다고, 그 틈을 학계가 메울 수 있다고 했다.

레슬리가 마지막에 정리한 구분이 좋았다. 결국 뭘 파는지가 다르다는 거였다. 회사는 아티팩트를 팔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산다. 그런데 학계는 아이디어나 방법론을 작은 규모에서 보여주기만 해도 된다. 이론이 포함된 방법론 하나가 통찰을 준다면, 그걸 아티팩트로 바꾸는 건 업계의 일이라고 했다. 뭘 팔고 있는지 스스로 분명히 아는 게 먼저라고.

패널이 끝나갈 무렵 누군가 완전히 다른 얘기를 꺼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신경망 구조와 하드웨어로 다 왔다고 생각하는 게 이상하지 않냐고. 지금 남은 건 그저 이걸 더 키우는 것뿐이라고 상상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라고. 10년, 20년 뒤에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와 있을 거라고, 생물학적인 무언가와 실리콘이 뒤섞인 하드웨어일 수도 있다고, 자기도 뭐가 될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그 방향으로 가면 큰돈 안 들이고도 정말 큰 임팩트를 낼 기회가 있을 거라고 했다.

집에 오면서 계속 소금통 생각이 났다. 로봇공학자가 평생을 바쳐도 로봇은 아직 소금통 위치 하나를 제대로 기억 못 한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여전히 안 될 것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어쩌면 좋은 연구란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될 거라는 확신이 없어서 계속 밀어붙일 수밖에 없는 일. 성공하면 뭐가 달라지는지 스스로 물어봐서 답이 나오는 일. 실패해도 뭔가 흥미로운 게 튀어나올 거라고 믿고 계속 가는 일. 나는 아직 그런 질문을 나 자신에게 자주 던지지 않는다는 걸, 이 패널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 글은 Global AI Frontiers Symposium 2026의 딥다이브 패널 토론 “Global AI Leadership: Academia-Industry-Government Collaboration”을 듣고 쓴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