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나이트로 데모데이에서 들은 발표 — 자본이 가장 흔해진 시대에, VC는 도대체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나이트로 데모데이는 대표 본인 얘기로 열렸다. 11월 초, 오퍼스 4.5가 나왔다는 소식에 별 기대 없이 묵혀둔 숙제 하나를 꺼냈다고 했다. 이더리움 인디케이터 30개를 모아 라이브로 도는 밸류에이션 대시보드를 만드는 일. 블록체인에 10년을 투자했어도 개발을 직접 놓은 지는 15년이 넘어서, 늘 누군가한테 부탁해야 했던 거였다. 지시만 넣어두고 화장실을 다녀왔더니 화면에 살아있는 그래프가 떠 있었다고. 차트 8개에 외부 API까지 알아서 붙여 라이브 데이터를 끌어오고 있었고, 올렸더니 카이토 글로벌 1위까지 갔다고 했다. 몇 시간 만에. 그날 이후로 하루 서너 시간씩 바이브 코딩을 한다는 거다.
바이브랩스가 나이트로가 된 이유
원래 이 프로그램 이름은 ‘바이브랩스’였다고 한다. 근데 2주 전쯤 “이름 바꿔야 할 것 같다”고 팀에 던졌다는 거다. 이유가 좀 흥미로웠다. 바이브 코딩이라는 말이 곧 사라질 것 같아서라고. 자연어로 만드는 게 그냥 ‘코딩’이 되는 세상이 오면 ‘바이브’라는 수식어는 필요 없어진다는 거다. 호흡하듯 만들고 배포하고 글로벌하게 데모하는 에너지를 담을 단어로, F1 질소 부스터 터지는 느낌에서 나이트로를 골랐다고 했다.
기획은 작년 12월 아부다비 출장 호텔 방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미국에선 1인 창업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었고, 개발만 바이브 코딩으로 하는 게 아니라 마케팅·BD·재무·회계·세무까지 에이전트 팀으로 돌리고 있었다는 거다. 혼자선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던 걸. 그러다 몇 달 만에 ARR 1000만 달러를 넘기며 VC 라운드를 통째로 건너뛰는 일이 반복됐고, 미국 VC들이 “우리는 도대체 왜 존재하나”를 묻기 시작했다고. 그 질문이 자기한테도 왔다는 거다.
그래서 VC는 뭘 주는가
대표가 내놓은 답은 세 가지였는데, 이게 발표의 핵심이었다.
하나, 같은 눈높이의 조언. 창업자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니 옆의 기회나 리스크를 놓치는데 VC는 위에서 넓게 본다는 거다. 근데 그 조언이 바이브 코딩을 직접 해본 사람 입에서 나오느냐, 이론으로만 아는 사람한테서 나오느냐는 완전히 다르다고. 그래서 자기 팀도 창업자들이랑 같이 바이브 코딩을 하면서 같은 언어로 말하는 파트너가 되려 했다는 거다.
둘, 신뢰의 숏컷. “눈에 보이는 모든 프론트엔드는 오픈소스다”라는 말을 자기들끼리 한다고 했다. 요즘 모델에 스킬 좀 쓰면 어떤 웹사이트든 10~20분이면 거의 복제된다는 거다. 그러니 ‘어떻게 만드느냐’는 더는 노하우가 아니고, 차별점은 뭘 만들지 먼저 보는 안목이랑 그걸 신뢰를 업고 연결해주는 네트워크라고. 서울 본사에 싱가포르·뉴욕·SF·벵갈루루·방콕·아부다비 지사를 둔 자기들이 미국부터 중동 국부펀드까지 이어줄 수 있다는 거였다.
셋, 비슷한 병에 걸린 사람들끼리의 환경. 바이브·에이전트 코딩에 완전히 빠진 사람들은 이 세계 밖 사람들과는 대화가 안 되고, 새 모델 소식을 못 따라가면 불안하고, 도파민이랑 공포가 교차하는 하루를 보낸다는 거다. 그래서 같은 결의 동료가 필요하다고. 그로스·개발·디자인 각 분야 전문가 20명쯤을 펠로우로 직접 영입했고, 제주에서 오프사이트를 두 번 했는데 거기서 비밀유지 각서도 없이 서로 GitHub에 contributor로 등록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고 했다. 펠로우 한 명이 새벽 4시부터 오후 4시까지 12시간 내리 어느 팀 인프라를 리팩토링해준 일도 있었다고.
무대엔 네 팀이 섰다. 7개월 만에 월 10억을 넘긴 GPTO, 만 19세 파운더가 하루 45억 토큰을 돌리며 월 3억을 만든 AI 롤플레이 엘린 AI, 광고 한 푼 없이 3개월에 7만 5천 명을 모은 러닝 앱 키로, 에이전트 시대 UI를 오픈 프로토콜로 짜는 GGUI. 300팀이 지원해 5팀을 뽑았고, 피치덱이 아니라 결과물로 골라 5% 지분 투자와 함께 8주를 같이 달렸다고 했다.
발표는 다시 화장실 얘기로 닫혔다. 그날의 충격이 자기를 여기까지 끌고 왔고, 비슷한 충격을 이미 받았거나 곧 받을 사람이 이 자리에도 꽤 있을 거라고. 단순한 신기함으로 끝내지 말고, 거기서 뭔가 만들기 시작하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
발표 자체는 결국 자기 VC가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자리이긴 했다. 근데 ‘자본이 제일 흔한 자원이 된 시대에 VC는 뭘 주는가’라는 질문은 진짜 같았다. 셋 중 제일 와닿은 건 첫 번째였다. 직접 해본 사람의 언어로 조언이 나오느냐. 돈은 누구나 줄 수 있어도 같은 걸 만들어본 감각은 아직 흔하지 않으니까. 나머지 둘, 네트워크랑 커뮤니티는 좋은 말이지만 결국 규모 있는 곳이 더 잘하는 거라, 그게 진짜 차별점이 될진 좀 더 봐야 할 것 같다.
이 글은 Nitro Seoul(나이트로) 데모데이에서 들은 발표를 정리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