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 세상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살아남기
미리내(미리캔버스)의 Wanted HiFive 2026 발표를 듣고 정리한 기록 — AI 시대, 프로덕트 가치의 재정의
1년 전쯤, 나는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불안했다. 미드저니에서 뭔가 나왔다더라, 챗GPT가 이제 이미지도 만든다더라, 어제는 텍스트만 입력하면 디자인이 완성된다는 새로운 툴이 또 등장했더라. 팀원들과 나눈 대화는 대부분 같은 패턴이었다. “어? 저희 어떡하죠? 우리가 만들고 있는 거, 사람들이 아무도 안 쓸 것 같은데요.”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AI의 발전이 우리 프로덕트가 사용자들에게 전달해온 핵심 가치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담당하는 미리캔버스는 디자인을 잘 하지 못하는 비전문가들을 위한 툴이다. 그동안 우리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왔다. 뭘 어떻게 디자인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템플릿을 제공하는 것, 그리고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처럼 배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툴 대신 누구나 직관적으로 쓸 수 있는 에디터를 제공하는 것. 그런데 “텍스트만 입력하면 원하는 디자인이 나온다”는 AI 디자인이 등장하면서, 이 두 가지 문제가 한 번에 해소되기 시작했다. 우리의 존재 이유가 흔들리고 있었다.
가치를 다시 정의한다는 것
살아남으려면 프로덕트가 제공하는 가치를 재정의해야 했다. 그 출발점은 “사용자가 우리 프로덕트에서 가치를 느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지?”라는 질문이었다. 많은 프로덕트들이 ‘돈을 낸 순간’을 가치를 느낀 순간으로 정의하지만, 미리캔버스는 무료로도 쓸 수 있는 툴이라 그렇게 단순하게 볼 수 없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다시 찾아오는 행동’이었다. 파워포인트를 쓰다가 처음으로 키노트를 써봤는데 별로 만족스럽지 않으면 다시 파워포인트로 돌아가듯이, 미리캔버스에 만족한 사람은 다시 찾아온다. 그래서 다운로드 리텐션을 사용자가 가치를 느낀 순간으로 정의했다.
그 다음엔 다운로드 리텐션에 영향을 주는 선행 지표가 뭔지 분석했다. 결과는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디자인을 완성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고, 편집 액션 수가 적을수록 다운로드 리텐션이 높았다. 빠르고 쉽게 완성할수록 사용자는 가치를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나는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방식을 되짚어봤다. 표의 행간을 조정하기 쉽게 만들고, 차트 강조 기능을 개선하고. 그때마다 나는 ‘이게 진짜 비즈니스 임팩트를 만들고 있는 건가’를 체감하기 어려웠다. 이제 방향이 보였다. 단순히 사용성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이거 쓰면 나 진짜 빠르게 할 수 있겠는데?”라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기능이 필요했다.
그렇게 첫 번째 가설이 나왔다. AI로 프레젠테이션 초안을 만들어주면 어떨까. 당시 사내에 프롬프트 엔지니어도 없던 상황이었다. 8개의 템플릿을 골라 디자인마다 프롬프트를 직접 써가면서 2~3주 만에 기능을 출시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AI 프레젠테이션을 사용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편집 시간과 편집 액션 수가 약 50% 이상 감소했고, 다운로드 리텐션도 더 높게 나타났다. 이어서 원하는 레이아웃을 바로 검색해 적용할 수 있는 ‘딱 맞는 페이지 찾기’ 기능도 출시했는데, 편집 시간과 액션 수가 10% 이상 줄었고 역시 리텐션이 개선됐다.
가설이 검증되면서 한 가지 깨달음이 왔다. 사용자들은 ‘디자인을 쉽게 만들고 싶다’는 게 니즈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면 ‘원하는 디자인을 쉽게 얻고 싶다’는 것이었다. 직접 편집하는 건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이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미리캔버스 에디터를 거치지 않고 바로 디자인을 얻을 수 있는 AI 디자인 생성 프로덕트, 미리클을 만들었다. 아이콘, 로고, 프로필 사진, 제품 포스터까지. 이 하이파이브 홈페이지에 있는 내 프로필 사진도 미리클로 만든 거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게 빠르게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실패가 가르쳐준 것들
미리클은 처음 출시하고 한참이 지나도 일평균 회원 가입자 수가 100명을 넘지 못했다. MAU 상승에 기여하기는커녕 유입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엔 ‘기능이 부족한가’라는 생각에 더 다양한 기능들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정사각형 이미지를 가로형으로 늘려주는 기능, 유튜브 썸네일 생성, 카드뉴스 제작. 하지만 추세 자체가 꺾이지도, 올라가지도 않았다. 매 스프린트마다 어떤 기능을 출시할지 고민하고 시스템 프롬프트를 짜고 출시했는데 아무 성과가 없었다.
PM으로서 처음으로 진짜 무서워졌던 순간이었다. 이대로라면 접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팀원들의 시간이 아까웠고, 무엇보다 ‘이게 사용자에게 정말 필요한 게 맞나’는 근본적인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전략을 바꿨다. 기능 추가를 전면 중단하고, ‘모두가 잘 쓸 수 있는 프로덕트’가 아니라 ‘특정 타깃이 잘 쓸 수 있는 프로덕트’부터 만들기로 했다. 리텐션이 살짝이나마 더 높았던 소상공인 사용자들에게 집중했다. 매장 운영, 쇼핑몰 운영, SNS 마케팅으로 기능 카테고리를 재구성하고, 무대포처럼 들릴 수 있지만 사장님들에게 인스타 DM을 보내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떤 기능이 필요하세요? 이 프로덕트를 쓴다면 얼마 낼 것 같으세요?” 그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음식 연출, 포스터 만들기 같은 기능들을 전면에 배치했다. 결과는 일평균 회원 가입자 수 7배 증가. 마케팅 효율도 타깃이 명확해지면서 시너지가 났다.
첫 번째 인사이트가 여기서 나왔다. AI 프로덕트는 높은 성능보다 명확한 타깃이 먼저다. 챗GPT나 Claude처럼 성능이 뛰어난 제품들이 있는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남아야 한다면, 차별점은 ‘누구를 위한 AI 프로덕트인가’에서 온다. AI 모델은 점점 평준화되고 있다. OpenAI, Google, Anthropic, 오픈소스 모델까지 모두 비슷한 수준에 수렴하고 있다. 그 안에서 차별점을 만들 수 있는 건 결국 타깃이다.
유입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더 큰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리텐션이었다. MAU가 J커브를 그리기 시작했고, 40만까지 올라가면서 팀 전체가 들떴다. 스테이크홀더 미팅마다 “우리는 J커브를 만들고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용자 수에 비례해서 비용이 올라가고 있었다. 모델 호출 비용. 수익을 만들지 못하면 사용자가 늘수록 적자가 커지는 구조였다. 그리고 다운로드 리텐션이 정말 낮게 나타났다.
왜 사용자들이 돌아오지 않는지 분석했다. 흐름은 이랬다. ‘AI로 뭔가 만들어준다고 한번 써볼까?’ → 회원가입(전환율 80% 이상) → ‘아 신기하다’ → 다시 돌아오지 않음. 요즘 AI가 유행이라고 하니까 호기심으로 써보고, 흥미만 채우고 나가는 거였다. 그들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비용을 내가 지불하고 있었던 셈이다. 진짜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감각을 사용자들은 전혀 받지 못했다.
두 번째 인사이트. AI 프로덕트의 신규 유입은 허위지표일 수 있다. AI는 모델 호출 비용, GPU 비용 등이 굉장히 높은 해결책인데, 한 번 쓰고 떠나는 사용자가 쌓일수록 적자가 쌓인다. 살아남으려면 리텐션을 만들어야 한다.
목표를 MAU에서 PMF로 바꿨다. Sean Ellis Test 점수 40% 이상, NPS 40점 이상, 다운로드 리텐션 40% 이상. 숫자가 기억하기 쉬워서 다 40으로 맞췄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의 특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프로덕트를 떠나는 사람들의 이유를 분석하기엔 “한번 써봤어요”라는 피드백이 압도적이라 인사이트가 없었다. 반대로 계속 쓰는 사람들이 왜 쓰는지를 봤다.
두 가지 특징이 나왔다. 가입 당일에 생성 요청을 3회 이상 하고 다운로드하면 리텐션이 급격히 높아졌다. 그리고 가입 당일에 서로 다른 기능을 2개 이상 사용하는 것도 유의한 요인이었다. 아이콘을 만든 뒤에 그 아이콘을 움직이게 만드는 동영상 기능으로 이어서 쓰는 식으로.
해결책은 명확해 보였다. 기능을 쓰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음 기능을 권유하는 추천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 음식 연출 기능을 쓴 사용자에게 그 사진으로 신메뉴 포스터를 만들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실제 사용자들의 연속 사용 패턴을 분석해서 추천으로 제시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추천 기능 사용량 자체가 저조했고, 아하 모먼트를 경험하는 사용자 비율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데이터 기반으로 액션 아이템을 도출했는데 완전히 실패한 거였다. 세 번씩이나 데이터를 다시 뜯어봐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데이터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닐 텐데 왜 실패했을까.’
그래서 사용자를 직접 찾아갔다. 인터뷰에서 나온 답변들. 사용자 A: “여러 번 요청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어요.” 사용자 B: “진짜 필요한 디자인을 얻으려면 기능을 여러 개 써야 해요.” 사용자 C: “처음 만든 건 별론데 여러 번 쓰다 보면 마음에 드는 게 나와요.”
공통점이 보였다. 우리가 데이터로 본 ‘생성 3회, 2가지 기능 사용’은 결과였지, 원인이 아니었다. 사용자들은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행동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우리는 그 결과만 보고 아하 모먼트를 정의해서, 그 지표를 억지로 올리려고 기능 추천이라는 액션을 한 거였다.
아하 모먼트의 본질은 ‘원하는 결과물을 끝까지 생성해내는 경험’이었다.
이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미리클 2.0을 만들었다. 기존에는 각각의 생성 요청이 독립적이었다면, 이번엔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연속성에 집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많은 AI 서비스들이 이미 이렇게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튼 결과는 NPS가 10~20점대에서 40점 이상으로 뛰었다. KR 하나를 달성한 순간이었다.
세 번째 인사이트. 데이터는 방향을 알려줄 뿐이고, 진짜 이유는 사용자의 목소리에서 온다. 이 말이 뻔하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그러지 않겠지. 당연한 사실 누가 몰라. 그런데 미리클을 출시하면서 데이터를 중요하게 생각할수록, 정작 이 함정에 빠지기가 더 쉬웠다. 데이터 환경이 잘 갖춰질수록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한다. 지금 데이터만 보고 의사결정하고 있다면, 사용자를 세 번만 만나보길 권한다. 멀리 있는 사용자가 아니어도 된다. 옆 팀 동료한테 물어봐도 인사이트가 나올 때가 있다. 나는 우리 팀 PM들에게 늘 말한다. “엉덩이 무겁게 일하는 PM은 성공하기 어렵다.”
마지막 인사이트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찾아왔다.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격이라 소개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솔직하게 다 공유하는 게 맞겠다 싶었다.
미리클 2.0을 출시하고 나서, 다운로드 리텐션은 올랐는데 다운로드 전환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연속적으로 개선을 유도하는 흐름이 일부 사용자들에게는 부담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진 고양이 사진을 조금 더 깨끗하게, 눈을 조금 더 초롱초롱하게, 동공 모양도 바꿔달라는 식으로 계속 개선을 요구받다 보면 “이거 고쳐야 되네, 그냥 GPT 쓰러 가지”가 되는 거다.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루 종일 사용자들이 기능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뜯어봤다. 그때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미리클에는 제품 사진을 넣으면 포스터로 만들어주는 기능이 있었다. 커피 사진만 넣으면 “아메리카노 4900원” 포스터가 나오는 것처럼. 그런데 꽤 많은 사용자들이 이미 완성된 본인의 포스터 디자인을 넣고 있었다. 그들이 원한 건 완성된 디자인의 퀄리티를 통째로 개선해주는 거였다. ‘내 카페 메뉴 포스터는 있는데, 이게 너무 구려. AI가 더 멋있게 바꿔줬으면 좋겠어.’
처음엔 ‘이 기능을 잘못 쓰고 있구나. 가이드를 강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게 잘못 쓰는 게 아니라 진짜 니즈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사용자가 기존 디자인을 업로드하면 원하는 스타일 방향을 선택하고, 미리캔버스의 템플릿 자산을 기반으로 더 퀄리티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주는 리디자인 기능을 만들었다.
이 기능의 다운로드 전환율, 다운로드 리텐션, NPS가 최고치를 달성했다. 특히 NPS가 60점대가 나왔다. A/B 테스트를 위해 잠깐 기능을 내렸을 때, CS로 이런 문의가 들어왔다. “리디자인 기능 어디 갔나요? 이 기능 없으면 미리클 쓸 이유가 없는데요.”
네 번째 인사이트. AI는 사용자가 자기 식대로 변용해서 쓸 수 있는 범용 도구에 가깝다. 우리가 만든 가이드대로 쓰지 않는 사용자가 있다면, 그건 가이드가 잘못된 게 아니라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더 큰 니즈가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사용자가 AI를 지금 쓰고 있는 방식에 답이 있고, 그 패턴이 프로덕트의 핵심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매주 하루 정도를 투자해서 사용자들이 기능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직접 들여다본다.
변하지 않는 것
1년을 돌아보면, 처음 시작했던 질문이 기억난다. “AI가 발전할수록 내 프로덕트가 위협받는다는 느낌, 받아보신 적 있으신가요?” 지금 우리 스쿼드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AI가 더 빨리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한글이 깨지지 않는 모델이 빨리 나와야 우리가 더 커질 것 같아요.” 1년 전의 “저희 어떡하죠?”와는 완전히 다른 말들이다.
AI가 발전할수록 사용자 문제에 더 가까이 가는 프로덕트가 강해진다. AI는 사용자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도구다. 계산기가 나와서 회계사들이 사라지지 않았고, 엑셀이 나와서 더 많은 것들이 가능해진 것처럼. 대신 더 좋은 도구를 더 잘 활용하기 위해선 누구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훨씬 더 예리하게 정의해야 한다.
PM이 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그 문제는 왜 발생하고 있는지, 왜 이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PRD를 더 잘 쓰는 PM이 아니라 이 PRD를 쓸 필요가 있는가를 판단하는 PM. 누구보다 고객과 시장을 압도적으로 깊게 이해하는 사람. AI 시대에 변하지 않는 PM의 본질은, 결국 그것이다.
이 글은 Wanted HiFive 2026에서 미리내(미리캔버스)의 발표를 듣고 정리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