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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틀린다는 것을 빨리 아는 것이 전략이다

라포랩스(퀸잇)의 Wanted HiFive 2026 발표를 듣고 정리한 기록 — 40~50대 고객을 위한 커머스에서 배운 것들

목차

30대 남성 두 명이 4050대 여성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나섰을 때, 주변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B2B나 하지 않겠냐는 예상, 까무잡잡한 얼굴에서 여성 패션 앱이 나올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처음엔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퀸잇은 패션 앱 MAU 4위이고, 단독 소비자 비율이 어떤 앱보다도 높다. 그러니까 4050대 여성분들한테는 퀸잇 외의 대안이 사실상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자리에서 성공 스토리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보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얼마나 기본적인 것에서 틀렸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실패하고도 배우지 못했던 것들

라포랩스를 만들기 전에 나와 공동대표 희민은 거의 10년을 함께 보냈다. 그 사이 회사를 세 개 만들었고, 검토한 아이템만 백 개가 넘는다. 화장품 구독, 반려식물 화분, 데이팅 서비스. 화분은 크라우드펀딩까지 했는데 구매하신 분들한테 욕을 꽤 먹었다. 전부 망했다.

그렇게 다 실패하고 나서 우리가 물었던 질문은 하나였다. 이번에 딱 한 가지만 바꿔야 한다면, 무엇을 바꿔야 할까? 그때 깨달은 건 단순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것을, 혹은 시장이 원할 것 같은 것을 만들어왔다는 것. 그래서 이번에는 무조건 고객이 원하는 곳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그 다짐이 처음으로 구체화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희민 어머니가 우리가 들어본 적 없는 쇼핑 앱에서 2주에 한 번씩 옷을 사고 계셨다. 60대 분이 모바일 쇼핑을 하신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무엇을 사고 계신지가 더 궁금했다. 거기서 깊게 파고들면서 가설이 생겼다. 지그재그, 에이블리, 브랜디 같은 앱들에서 40~50대 여성분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상품을 찾기가 굉장히 어렵겠구나.

가설을 세운 뒤에는 검증이었다. 프로토타입을 빠르게 만들고, 100명 가까운 고객을 만났다. 하루에 4~5명씩, 만나고 나서 밤에 프로토타입을 고치고, 다음 날 또 만나는 사이클을 반복했다. 지금이라면 AI를 꽤 활용했을 텐데, 그때는 상당히 우울하고 힘들었다.

그러다 어느 인터뷰가 끝나고 한 분이 나가시면서 물으셨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어떻게 나온 거야?” 인터뷰 도중에는 “이거 위험하다, 내가 돈을 너무 많이 쓸 것 같다”는 말도 들었다. 그 말들을 듣고 나서 희민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 짜릿함을 얻기 위해서 인터뷰를 쭉 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출시 이후도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마이크 타이슨이 한 말처럼 — 엄청 쳐맞으면서 나갔다.

첫 번째 실수는 랭킹이었다. 무신사에서 랭킹은 거래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높다. 당연히 우리 앱에도 베스트 메뉴를 추가했다. 결과는 DAU의 1~3%만 진입했다. 관심이 없는 거였다. 베스트가 안 먹히니 랭킹으로 바꿔도 마찬가지였다. A/B 테스트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전혀 없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당연했다. 우리 고객분들은 수십 년째 쇼핑을 해오신 분들이다. 취향이 세분화되어 있고, 강하다. 남이 산다고 사는 분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인기순 배열을 개인화 추천 알고리즘으로 하나씩 바꾸기 시작했더니, 손을 대는 지면마다 구매 전환율이 2배씩 올랐다.

두 번째 실수는 남성 고객에 대한 선입견이었다. ‘퀸잇인데 남자가 쓰겠어?‘라는 생각, 그리고 앱에서 팔리는 남성 상품들은 ‘어차피 여성 고객들이 남편 사주는 거다’라는 가정. 두 가지 다 틀렸다. 퍼포먼스 마케팅을 해봤더니 남성의 CPA가 여성보다 오히려 낮게 나왔다. 이상해서 50~60대 남성 고객들을 직접 만나봤다. “퀸? 잘 몰라. 내가 사고 싶은 게 있었고 여기서 싸게 팔길래 샀어. 골프 용품도 싸게 팔고.” 이름은 아예 신경을 안 쓰고 계셨다. 데이터를 확인해보니 경쟁사에서는 같은 기간 남성향 거래액이 빠지고 있었는데 우리만 올랐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남성 고객들의 retention이 쌓이고 있었다.

그 다음에 저지른 실수가 더 재미있다. ‘여성 고객에게 개인화가 잘 먹혔으니 남성 고객에게도 개인화를 적용하자.’ 그랬더니 안 먹혔다. 40~50대 남성 고객들은 오히려 랭킹을 선호했다. 취향이 좀 더 유니폼한 편이었다. 같은 연령대라도 성별에 따라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었다. 결국 남성으로 식별된 고객들에게는 UI 전반의 여성향 이미지를 걷어내고 랭킹 중심의 경험을 제공했더니 남성 고객 구매 전환율이 10% 올랐다.

세 번째는 폰트였다. 앱에서 글자를 확대하면 레이아웃이 깨지는 문제를 우리는 알면서도 낮은 우선순위에 두고 있었다. ‘우리 고객들도 그냥 기본 글자 크기를 쓰겠지’라는 암묵적 가정이 있었다. 실제로 데이터를 열어봤더니 일반 글자 크기를 사용하는 고객이 35%밖에 안 됐다. 우리 팀은 전부 아이폰을 쓰는데 우리 고객의 99%는 안드로이드를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만들면서 봤던 화면은 실제 고객 중 극히 일부만이 경험하고 있던 화면이었다.

접근성 TF를 꾸려서 퀸잇만의 접근성 시스템을 새로 설계했다. 배율별로 텍스트 크기를 미세 조정해서 글자를 키워도 아름답고 시인성이 높은 화면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결과는 R2 2.5%, CTR 4.2%, 찜하기 3.7% 상승이었다. 접근성이 선의의 사회적 활동이 아니라 비즈니스 임팩트라는 것을, 그것도 꽤 큰 임팩트라는 걸 그때 알았다.

마지막 사례는 채팅 상담이었다. “우리 고객은 전화를 좋아한다.” 너무 자연스럽게 믿었던 선입견이었다. 그래서 채팅 상담을 개선하는 것의 우선순위를 계속 낮게 뒀다. 어차피 전화 쓸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유저 리서치를 해봤더니 고객들은 처음엔 채팅을 먼저 시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채팅 프로세스가 번거롭거나 답변이 불만족스러울 때 전화로 넘어가고 있었다. 전화를 선호하는 게 아니라, 채팅이 불편해서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드는 것이었다. 채팅 상담을 개선하고 첫 응대를 AI로 전환했더니, 서비스 시작 이래 처음으로 채팅 상담 비율이 전화 상담을 역전했다. 우리는 그 비율이 바뀔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틀렸다는 걸 빨리 아는 조직을 만드는 것

이 사례들을 다시 보면 공통된 패턴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타겟 고객이 아니기 때문에 훨씬 자주 틀린다. 2030대를 타겟으로 하면 조금 나을 수 있겠지만, 4050대를 타겟으로 하는 한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틀릴 가능성이 높다. 그 사실을 받아들인 뒤에 중요해진 질문은 ‘어떻게 틀리지 않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빨리 틀렸다는 걸 알까’였다.

그런데 이걸 개개인의 능력에 맡기면 안 된다. 사람마다 고객을 만나는 역량도, 직관도, 언제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다 다르다. 그래서 이것을 조직 구조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판단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창업 초기에 했던 것을 유지하는 일이었다. 인터뷰를 반복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걸 알게 되는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효과가 있다. 고객을 데이터가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뭔가를 만들거나 결정할 때 그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자체가 구성원들에게 특별한 동기부여가 된다.

하지만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섬세한 일이다. 성급한 일반화가 심하다. 이모한테 물어봐서, 부모님한테 물어봐서 얻은 인사이트는 전체 고객군의 5%도 안 되는 라이프스타일일 수 있다. 유도 신문도 하기 쉽다. “이거 쓰실 것 같으세요?”라고 물으면 성격이 나쁘지 않은 분들은 대부분 “뭐 괜찮은 것 같은데요”라고 하신다. 그 답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인사이트 팀이 있다. 스포티파이의 케이스를 많이 참고했는데, 단순히 UT나 UX 리서치를 하는 팀이 아니라 고객 인사이트를 전사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다. 리서치 대상을 추출하는 단계부터 심혈을 기울인다. 전체 고객의 대표성을 띠는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이 리서치가 해결하려는 질문의 대상이 되는 고객군을 데이터 기반으로 설정한다.

그리고 기능 단위의 UT에 그치지 않고 Foundational Research를 주기적으로 한다. 이분들이 어떤 삶을 살고 계신지, 평소에 어떻게 행동하시는지, 어떤 채널에서 어떻게 소비하시는지—어떤 기능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나서 하는 리서치가 아니라, 전략적 방향 자체를 정하기 위한 기반을 만드는 리서치다. 여기서 얻어진 인사이트는 리포트로 발행되어 전사 공유된다.

이 인사이트가 리포트에 묻히지 않도록 사내 AI 에이전트도 활용하고 있다. 라쿠라는 이름인데, 인사이트 팀의 리서치와 리포트에 접근해서 슬랙에서 프롬프트 하나로 관련 인사이트를 추출할 수 있다. 만드는 과정에서도, 사업적 의사결정에서도 이 에이전트가 꽤 활발하게 쓰인다.

리서치 결과를 공유할 때 모든 리서치를 송출한다. 참관할 때 지켜야 할 가이드도 따로 있다. 그냥 앉아서 보면 될 것 같은 일에 가이드라인이 있다는 게 처음엔 과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만큼 미묘한 일이라는 뜻이다. 리서처가 수동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시점을 찾고 이슈를 먼저 제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메이커들이 “아, 이런 시점에 리서치가 필요하구나”를 체감하기까지는 시간과 교육이 모두 필요하다.


창업할 때부터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다짐이 세 가지다. 내가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들자. 고객을 잘 안다고 자신하기보다 언제나 지적 겸손함을 유지하자. 그리고 고객에 대한 관심을 개인기에 맡기지 말고 조직 차원에서 더 잘할 수 있도록 계속 고민하자.

얼마 전에 사고 연구소라는 새로운 연구소를 만들었다. 40대 이상 고객들의 페르소나 맵을 만들고, 어떤 채널에서 정보를 얻고, 어떻게 소비하고, 어떤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까지 깊게 연구해서 정기적으로 발행하고 외부에도 알리는 역할을 하려 한다.

40~50대가 젊어지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 아니다. 나이 듦 자체가 나쁜 일이 아니고, 이 나이대에 추구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가치가 있는데 사회적으로 너무 저평가되어 있다. 본연의 나이대가 가진 멋과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을 잘하려면, 우리가 틀렸다는 걸 가장 먼저 아는 회사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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